◈불러도 대답 없는 어머니
손학규가 세 살 때 불의의 사고로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날 이후로 손학규의 어머니는 10남매의 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가셔야 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험한 농사일을 하시며 똥지게를 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으셨다. 비록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교직에 대하여 자부심이 강한 분이셨다. 남편이 교육자였을 뿐 아니라 당신 역시 교직에 몸 담은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공부 잘하고 총명한 손학규가 사범 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하실 정도였다. 재야운동가가 되어 쫓겨 다녀야 하는 손학규 때문에 어머니는 늘 애타는 마음이셨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으셨다. “우리 학규가 도둑질을 해서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야.” 때문에 손학규를 쫓아다니는 형사들마저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가 암에 걸려 병원에 눕게 되었다. 손학규가 경찰의 눈을 피해 찾아왔을 때 당신께서는 화부터 먼저 내셨다. “네가 어떻게 여길 왔니? 빨리 가거라. 빨리 가!” 얼마나 보고 싶었던 막내아들이었을까.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이 행여 경찰에 체포될까 두려우셨던 것이다. “이 놈아, 어딜 가도 밥은 꼭 챙겨먹고 다녀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슬픔을 겨우 참으며 뒤돌아서는 아들의 손에 쥐어주시던 꼬깃꼬깃한 지폐. 손학규는 그 날의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 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병세가 완전히 악화되신 후에도 어머니는 기어이 아들을 부르지 않으셨다. 손학규는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부음 소식을 접하게 된다. 영등포에서 친구로부터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들은 후, 손학규는 그 자리에서 통곡하고 말았다. 평생 동안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셨던 어머니의 임종도 보지 못한 불효자가 되었기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근데, 너 장례식장에 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친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물론 장례식장에 도착하는 즉시 형사들에게 체포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손학규는 주저하지 않았다. 하얗게 백지장 같은 얼굴로 장례식장에 나타난 손학규는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는 오랜 수배 생활로 거칠어진 손등 위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그 후 오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손학규가 가장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어머니이다. 매년 설날이 되어 맛깔스럽게 끓인 떡국을 볼 때마다 언제나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한다. ◈꿈길 밖에 길이 없네 - 사랑하는 나의 아내여
손학규가 부인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다. 부인의 전공은 약학이었다. 두 사람은 7년 간의 긴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7년 간의 연애 동안 군대 갔다 오고, 민주화 운동이다, 수배 생활이다 하면서 정상적으로 같이 보낸 시간은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의 데이트는 주로 여러 사람들과의 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부인을 데려다주는 길에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손을 꼬옥 잡고 대화를 나누며 밤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희망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20대의 나이이기에 손학규는 때때로 골목길에서 아내를 힘껏 껴안아 주곤 했다. 결혼을 한 후에는 세를 들어 살며 부인이 약국을 운영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손학규는 부인에게 너무 미안하다. 돈을 벌기는커녕 수배를 당해 쫓겨 다녀야 하는 처지. 그렇지만 부인은 묵묵히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부인은 남편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싶을 때마다 연애 시절 즐겨 찾았던 마로니에 공원을 홀로 거닐며 눈물을 흘렸다. 손학규 역시 부인이 보고 싶어지면 공중전화를 걸었다. 부인이 전화를 받으면 두 사람은 그리움 때문에 오랜 시간 말 한 마디도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손학규가 겨우 입을 열며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황진이의 ‘님’이라는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면 내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두 사람의 처지와 꼭 들어맞는 노래 아닌가. 그 애절한 가사에 부인이 먼저 눈물을 쏟으면 손학규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래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끝까지 노래를 불러주었다. 영국 유학 시절 부인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한국과 영국을 오고가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부인이 아니었다면 손학규의 유학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손학규가 누구보다도 여자의 능력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힘든 시절 함께 손을 맞잡고 어려움을 이겨냈던 부인의 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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