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동경 메이지(明治)대학에서 유학을 할 때의 일이다. 석사과정 1학년 차에 들어간 나는 이또오(伊藤) 지도교수님을 아무 생각 없이 ‘이또오 교쥬(敎授)’라고 불렀다. 그러자 한 일본인 선배가 나를 따로 부르더니만 ‘교쥬’라 하지 말고 ‘센세이(先生)’로 고쳐 부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센세이’란 호칭은 학교 선생님이면 누구에게나 붙이는 흔한 호칭이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그래도 그게 예의라고 했다. 즉 ‘센세이’가 교육자에 대한 최대의 존칭이라는 말이다.

  그 일본인 선배는 게다가 한 마디 더 얹어서 이런 말을 해준다. 동료교수 중 나이가 든 선배교수는 후배교수에게 ‘교쥬’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젊은 교수나 후배 교수는 선배나 연상의 교수에게 반드시 ‘센세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좌우지간 이것이 호칭에 대한?일본의 바람직한 관행이란 것이다.

  그리고 서른한 살이 되던 1991년 3월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에 들어서는 서울 및 그 인근 지역 대학에 재직하는 대학교수들은 대부분 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과학을 비롯한 공학 이학 등의 계열은 어떠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인문 사회과학 분야만큼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내용을 가지고 모두들 학위 진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수의 호칭에 대한 문제는 귀국 후 수년간 대학 강사를 해야만 했던 나를 여전히 불편하게 했다. 일본식에 익숙한 나는 ‘교수님’이란 호칭 대신에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본디 ‘님’이란 글자는 일본어에서는 붙이지 않는다. 그냥 ‘교쥬(교수)’이거나 ‘센세이(선생)’면 족하다. 우리말 ‘님’에 해당하는 ‘사마’ 또는 ‘상(樣)’은 이러한 경우 붙이지 않는다. 흔히 우리는 ‘과장님’ ‘사장님’ ‘회장님’ ‘군수님’ ‘장관님’ ‘대통령님’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실은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 뒤에 붙이는 ‘님’은 아부나 아첨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론 타인의 가족관계를 높여 부를 때에는 아버님 사모님 아드님 따님 등과 같이 일본어에서도 ‘사마’ 또는 ‘상’을 붙인다. ‘오또오상’ ‘옥상’ ‘오무스꼬상’ ‘오죠오상’ 등이 그렇다.

  어쨌거나 우리나라 대학교수들 중에는 (반드시 내지는 가급적) ‘교수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을 선호하는 인간형과, 그냥 평범하게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는 인간형, 그리고 일본식으로 따져서 불러야 마땅하다는 인간형이 있다. 교수들이 이럴진대 대학교수의 호칭에 대해선 학생들이 더 헷갈릴 수밖에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이렇듯 대학교수의 호칭에 대한 혼란의 주된 원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기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공자나 맹자와 같은 대성현들을 이름 하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6, 70년대에까지 통용되었다. 그러다가 서양 유학자들이 귀국하면서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즉 해방 후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유럽파 유학생, 그 최대 정점에 있는 1980년대 미국파 유학생들 중에는 교수님을 대신하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그리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파라 하더라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중에는 일본식 호칭에 동의하는 대학교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젊은 서양파들은 엄연히 ‘프로페소르’(professor)란 호칭이 존재하는 이상, 이에 따라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호칭은 편리상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호칭의 대상이 되는 분에게 심적 불편함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겠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이는 것도 보기 안 좋다. 나이가 들수록 왠지 선생님이란 말에 정감이 더 묻어난다고 느껴지는 것은 내가 굳이 일본파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을 높여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실제 교육자나 연장자는 아니어도 성씨를 따서 ‘○ 선생’이라고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프로페소르’하지 못한 사람이 대학교수가 된들 무엇이 세상에 이로울 것인가. 오늘을 사는 교수라면 호칭에 연연하기 전에 과연 자신이 대학교수로서 자질이 마땅한가를 먼저 자문해보아야 할 일이다.

◈박일훈 교수 프로필
▲시인 ▲법학박사(일본 明治大學) ▲노령신문 수석논설위원 ▲무안문인협회 회장 ▲초당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