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가 행정구역 통합을 기습적으로, 그리고 졸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 내용과 과정에 많은 문제 제기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부산 등 일부 자치구 통합안'을 의결 정족수도 채우지 않고 의결하는 등 지역의 주민들을 무시하는 위원회 운영을 하고 있다.

 관련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4월 13일 서울 중구·종로구, 부산 중구·동구, 수영구·연제구 등 인구와 면적이 해당 지역 평균에 미달하는 자치구 10곳을 5곳으로 통합하는 안건을 의결하였는데, 27명의 위원 가운데 22명이 참석하고 8명만 찬성하여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였다.

 그런데 위원장이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직권'으로 안건을 처리하여'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일'을 벌여서 비난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 명 주민들의 삶이 국회도 아닌 이런 어처구니없는 위원회 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다. 부산 수영구·연제구 통합안은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개최된 한국지방정부학회 토론회에서조차 논의되지 않은 그야말로 탁상공론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이날 처리된 안건 중에는 경북, 전남, 충남의 자치단체 7곳을 3개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주민 여론조사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이는 주민들은 그냥 위원회의 결정을 따라오라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만약 이대로 실행된다면 그 후유증이 실로 클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과 광역시 6곳의 구의회, 군의회 74곳(전국 기초의회의 32%)을 폐지하고, 서울을 제외한 광역시 구청장은 단체장이 임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구청장만 지금대로 주민투표로 선출한다니 실로 수도 중심의 중앙집권적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오는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위원회 결정을 비판하며 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모 교수에 따르면 주민들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이런 결정을 본회에서 2번 정도 논의한 후 표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안건을 합의처리하지 못하고 표결로 처리하는 것 자체가 졸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풀뿌리 주민자치를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것과 같은 결정을 한 위원회에 대해 과연 지방자치를 지역과 자치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부산의 인근 창원시는 옛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되었으나 지방행정체계 개편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다. 창원시청 위치를 결정하는 문제로 시의원들은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몸싸움을 벌일 뿐 아니라, 4·11 총선에서는 각각의 지역 후보들이 시 청사를 본인이 속한 곳으로 가져가겠다고 공약을 하는 등 혼란과 갈등이 거듭되고 있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중대한 사안을 정부와 위원회는 왜 주민들의 의사수렴 과정도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처리하려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기초자치단체는 몇십년 혹은 몇백년의 정체성을 가진 주민들 삶의 기초 단위이자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는 행정단위이다. 지역주민들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와 생활동선, 심지어 집값까지도 달라지는 중대한 결정이 '바닥을 드러내는' '위기를 초래할' 결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지역의 문제, 지역의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