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도청 신청사가 남악리에 들어선지 벌써 십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나는 기회 있을 적마다 이곳에 들러 저수지 둑 위에 올라 가 본다. 작지만 예쁘장하게 만들어 띄운 그림 같은 축사와 푸른 물에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백조, 자태도 우아한 거위들 저편 수초사이에 보이는 듯 마는 듯 자맥질하는 오리들이 정겨웠다.
하구 둑을 막기 전에는 영산강 물고기가 올라와 이 저수지에는 물이 반, 고기가 반이란 말이 있었다. 그래서 낚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와 같은 이주민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되신 분도 계셨는데 거기에는 저수지 둑 밑에 살던 ‘경오 생’ 형도 있었다. 육이오(6.25)전쟁이 치열했던 시기 형과 같은 백말 띠 친구들은 함께 영장을 받고 입영했는데 용석, 영배, 상철이형은 모두 전사했다. 그 형도 온 몸에 부상을 입고 겨우 살아 왔지만 평생 환자로 지냈다.
그는 전장에서 포탄이 퍼 붓는 바람에 엎드린 상태로 부상을 입었다. 후송되어 반년이 넘게 치료를 받았지만 등에 박혀 있는 파편을 모두 제거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온전히 치료하는 데에는 현대의학으로도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하루도 일 안하면 못살 것 같이 살아온 그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자니 좀이 쑤셔 견디기 어려워 귀가신청을 했다. 그가 집에 오고 싶어 한 것은 고향을 마음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들은 이야기지만 자기도 죽은 사람으로 치부하고 다른 세 형들처럼 죽은 날짜도 모르고 한이 서린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자기가 죽은 게 아니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 왔는데도 자기가 원혼이 되었다고 건성으로 명복을 빌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람 살이가 다 무언가. 사람이 죽었다고 산 사람이 슬프다고 한다. 이것은 죽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 왔으니 다행이라고 한다. 사람은 감각이 있어 판단하고,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궁리한다. 그래서 영혼이 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하지만 자기는 정상적인 사람이 못 되었다. 왜냐하면 파편조각을 뼈로 착각하여 이를 감싼 살이 굳어 아프기 때문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하면 그 가짜 살 때문에 통증이 와서 일을 할 수 없다. 이는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을 형성하고 있는 육신의 일이지만 가짜와는 그래서 함께 살 수 없는가 싶었다.
그렇다고 일 못하는 자기가 부모님이나 아내가 피땀 흘러 애써 지은 식량을 마구 축내자는 의도도 없었다. 휴식은 근로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지만 자기의 경우는 그것도 억지인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상 당한지 40여년이 지난 1994년도에야 원호 대상자로 책정되어 규정된 원호비라도 받게 되어 집에서는 체면유지라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란 그 낚시하는 사람들 틈새에 끼어 낚시를 구경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꼭 그 형을 지목해서 한 말은 아니겠지만 ‘낚시하는 사람은 반 미친 댁이, 그걸 구경하는 사람은 온 미친 댁이’라고 했다. 일 놔두고 고기나 낚은 대서 한 말이었다.
바람 불어 날씨 나빠서 낚시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는 하릴 없이 홀로 저수지 둑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답답했던 가슴이 좀 트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수지 둑에 올라 마치 장승처럼 서서 밀리고 밀려가는 물결을 한참 드려다 보노라면 물속 수초사이에 부침하는 올챙이, 간혹 물위에 등배를 반짝거리며 헤엄쳐 다니는 피라미들, 몰입은 간혹 사람을 딴 세상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는데 어느 새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이 아는 피신처인 아늑한 궁전이 거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형은 이렇게 초라하고 피라미나 지나다니는 보잘 것 없는 물때 가득 찬 수초안의 보이지 않는 궁전이나 들여다보자고 아픈 육신의 치료마저 포기하고 그토록 오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걸 일러 쓸쓸한 고향사랑이라 할까. 그 백말 띠 형은 갔지만 그가 남긴 그림자가 지금도 건너편 저수지 둑 가에 하얀 영상으로 서 있는 것만 같다.
▣약력
◈경력 ▲2006년 전국 문화공모전 논문부문 최우수상 수상▲국사편찬위원회 무안사료조사위원▲무안문화원 이사·향토연구소 소장 역임▲무안문인협회 회원▲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수필집 ▲떡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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