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業自得 자기가 지은 죄는 되돌려 받아
傾國之女의 구약 2만3214절 암송 '神女?'
전국 신당 굿판도 불통 되어 결국 '감옥'
논어 위정편에 공자는 ‘이단(異端)’에 대해서 “攻乎異端 斯害也已(공호이단 사해야이), 세상사가 이단에 의해 대립해 외쳐 봐야 그들에게 해로울 뿐이다”고 하셨다. 이어 선진편에서 귀신에 대해 “未能事人 焉能事鬼(미능사인 언능사귀),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냐”고 하셨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손바닥에 ‘王’자 새기고 나타나 무속 신앙의 복술(卜術) 논란을 일으키며 결론은 당선 되었다. 지난 계엄사태를 돌이켜보면 손바닥에 ‘대통령’도 아니고 ‘王’자를 쓸 때부터 왕정 정치를 가슴에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王’자도 헌법재판소의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14 글자로 인생을 망쳤다. 十四 중 四자 속 획을 아래로 펴면 囚(가둘 수)가 된다. 십자 틀에 묶어 가둬 버린 것이다.
공자는 “獲罪於天 無所禱也(획죄어천 무소도야), 하늘에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 곳이 없다”고 했다. 윤석열은 하늘에도 땅에도 국민에게도 들짐승·잡초에게도 빌 곳이 없다. 왜냐 하면 죄는 자신이 지어놓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파렴치하게 떠넘기는 후안무치의 짐승보다 못한 낯가죽을 썼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원인 없는 결과 없’다는 因果應報(인과응보)를 말씀 하셨다. 즉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우주 법칙이다. 또 自業自得(자업자득)이라 하시어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자기가 돌려받는다”고 하셨다.
윤석열은 위선의 탈을 쓰고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의해 自繩自縛(자승자박)을 스스로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며, 자기 포승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고 영원히 구속되는 길을 개척했다. 재판 과정에서 까지 뉘우침이 없고 거짓으로 항변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 “항복하는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는 降將不殺(항장불살)도 아득히 요원해져 버린 자충수를 두었다.
1980년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부른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그냥 사랑한다 말하려고 전화했어요)’라는 노래 가사에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I just called to say how much I care. And I mean it from the bottom of my heart. 그냥 사랑한다는 말 하려고 전화했어. 당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말해주려고.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라고.
필자는 왠지 이 노래 말이 지난 계엄 및 내란사태 당시 국민들이 서로서로 전화하면서 하는 이야기로 떠오른다. 총칼 앞에 선 그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진심을 전하는 마음으로 들린다.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진심인 순수한 국민들이 아름다운 폭풍의 격랑이 되어 윤석열 내란수괴와 잔당들을 뒤엎어버렸다. 오염에 찌든 짐승이 된 오염수(汚染獸)들을 쫓아 버렸으나 아직 우리에 가두지를 못해 늘 위험 잔재 요인으로 남아 있어 또 언제 달려들지 몰라 지금도 거리에서 나라 사랑의 울타리를 치며 우리 속에 가두어 버릴 때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무를 교활하게 빠져나와 어느 날 대통령이 되어 육·해·공군들을 연병장에 도열시켜 사열·분열을 받더니 재미가 있었는지 그 이듬해 또 억지로 모아놓고 ‘요것들 봐라 나한테 충성하네’ 하며 위대하고 용맹스런 국군을 얕잡아 봤다.
그 결과 계엄(戒嚴)이라는 용어도 제대로 해석할 줄도 모르는 자가 계엄령으로 ‘왕정정치’를 노리며 윤석열이 자주 쓰는 말 ‘전체주의’가 결국은 ‘전제주의(專制主義)’였던가 보다. 자식이 없어 대를 이어 권력을 휘두를 수도 없으니 ‘통일대통령’ 조잘대던 측천무후 격인 집안에 물려주려 했던가 보다.
신약 야보고서(2:26)에 “영혼이 없는 몸은 죽은 것과 같고, 행동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같다”고 했다. 구약성서 창세기~말라기 까지 39권 929장 2만3214절을 모두 외운다는 ‘神女(신녀)’가 있어, 나라를 奈落(나락)으로 추락시켜도 괜찮고, 백성을 쥐어짜 죽이는 戒嚴(계엄)으로 구덩이 파서 매다는 繫埯(계엄)도 했을 것이다.
神女(신녀)가 전국 곳곳에 神堂(신당)을 차려놓고 자신들의 부귀광명을 위해 致誠(치성) 굿판을 열고 귀신들에게 阿諂(아첨) 잔치를 벌였으나 神命(신명)이 다했는지 통하지 않고 둘 다 감옥이라는 사각 통에 몸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논어 위정편에 “非其鬼而祭之 諂也(비기귀이제지 첨야), 자기가 모셔야 할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고 하셨다.
만해(萬海) 한용운 선사는 ‘언제가’라는 시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인생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뿐인 일회적 인생을 살다가 간다는 사실이다”고 읊었다. 한 번 왔다가는 인생 진실히 솔직해보자. 그리고 죄를 받아도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