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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탐방 2 - 무안군 관광문화와 유적·유물
 
이민행 대표기자 기사입력  2018/01/0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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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와 백련과 갯벌의 향연이 드넓게 펼쳐지는 무안
순수체험 관광도시 무안…충무공 이순신 얼 서린 곳

《무안군은 2016년  ‘관광 무안’ 원년을 선포하고,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관광자원화 하여 ‘꼭 한번 가보고 싶고, 머무르고 싶어서 다시 또 오고 싶은 〈순수체험관광도시무안〉’ 실현에 나설 것입니다. -박준수 무안군수 권한대행-》
《무안군은 최근 KTX의 무안공항 경유가 확정되고, 무안국제공항과 서해안고속도로, 무안~광주 간 고속도로 등 접근성이 좋은 관광인프라의 장점을 지니고 있어 ‘무안관광’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동진 무안군의회 의장-》
 ◈선사시대 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주거지, 패총, 지석묘·석관묘·옹관묘·적석총 등이 있다. 지석묘(고인돌)는 42개소이며, 입석(선돌) 5기, 패총 1개소 등이다.
 지석묘는 해제·운남·현경면 지역과 무안읍일로·몽탄·삼향 등 영산강 하류와 청계면 등 3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불교 유적
 불교유적으로는 법천사, 목우암(전남 문화재자료 제172호 목우암삼존불 牧牛庵三尊佛), 약사사, 원갑사 등이 있으며, 몽탄면 대치리 총지사지가 있고, 무안읍의 불무제(佛舞堤) 등 명칭으로 봐 커다란 불교 규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교 유적
 유교유적으로는 무안 향교를 비롯한 송림서원 터와 사우(祠宇), 그리고 정려문(旌閭門)과 각종 비(碑) 등이 있다.
 사우(祠宇)는 23개소가 있으나 1910년 이전에 건립된 것은 9개소뿐이고, 나머지는 이후에 형성된 것이다. 사액을 받은 서원으로는 ‘송림서원’으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정려와 충효열비 등은 91개소가 있다.
◈관방유적((關防遺蹟)
 관방유적(국가방위 목적 유적)으로는 봉수대·산성·진지 등이 있다.
 봉수대는 군산봉수대(삼향면 왕산리 봉수산)·고림산봉수대(청계면 강정리 도대봉)·옹산봉수대(현경면 용정리 봉대산)·해제봉수대(해제면 신정리 봉대산) 등이 있다.
 산성으로는 공수산성(무안읍 남산)·보평산성(무안읍 고절리 보평산)과 최근에 발견된 봉대산성(해제 봉대산)이 있다.
 진성지(鎭城址)로는 다경진성지(운남면 성내리 원성안), 임치진성지(해제면 임수리 임치마을)가 있으며, 전선(戰船)을 건조하던 곳으로 이산진전선창(梨山津戰船廠/몽탄면 이산리)이 있다.
◈도요지(陶窯地)
 도요지(陶窯地)로는 무안이 ‘분청사기’의 고장이라 할 만큼 많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계통별로 보면 분장문·귀얄문·조화문 계통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현재 몽탄면과 청계면에 ‘가마’가 가동되고 있다. 몽탄에 ‘분청사기 명장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
◈민속 문화
 민속 문화로는 동제와 장승은 우리 지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무속신앙과 더불어 고유의 민속 문화 소산으로 인정되는 장승은 무안읍 남산 석장승과 총지사 장승을 비롯하여 6기가 남아 있다.
◈초의선사탄생유적지
 초의선사탄생지는 차의 성인 초의선사 탄생지를 기리기 위해 1997년 삼향읍 왕산리에 초의선사현창사업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 시(詩)·서(書)·화(畵)에 뛰어난 선승(禪僧)으로 다도(茶道)를 중흥시킨 다성(茶聖)으로 추앙받고 있다.
 특히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최고의 거유 석학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유(儒)·불(佛)·선(仙)을 넘나들며 조선 후기 침체된 실사구시(實事求是) 바람을 불러일으킨 초의 선사의 역사성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탄생유적지에는 ▲초의선사 생가 ▲초의선사 사당 다성사(茶聖祠) ▲시다원(施茶院) ▲조선 차(茶) 역사 박물관 ▲초의선원 ▲초의선사 기념관 ▲금오초당(金烏草堂) ▲다(茶)문화관 ▲명선관(茗禪館) ▲용호백로정(蓉湖白鷺亭) 등이 있다.(061-285-0300)
◈임치진성(臨淄鎭城)
 임치진성(臨淄鎭城)은 무안군 해제면 임수리 해안가에 산성이다. 특히 해제면에는 봉대산성(烽臺山城)과 임치진성(臨淄鎭城), 옹관묘(甕棺墓) 등 석기시대 유물이 산재해 있다.
 임치포구는 전라우도수군의 머물면서 전남의 서남해역을 방어했던 진지로 임진애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번이나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현재 성벽의 일부가 남았으나 농가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밭을 확장하기 위해 훼손이 심각한 상태이다. 임치진성은 현청(縣廳)이 설치되어 있던 곳으로써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봉대산성(烽臺山城)
 봉대산성은 해제 백제산성이다. 봉대산은 해제면의 주산으로 무안 해제의 봉대산은 해제면의 주산이다 해발 200여m의 봉우리라 산이라 말하기에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그래도 근방에선 가장 높기에 서해의 많은 섬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다경진성(多慶鎭城)
 다경진성에 대한 기록은 성종 12년(1418)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함평현 관방조(關防條)에 다경진성은 임치진 관할이었으며, 후에 진도진관(珍島鎭管)에 소속돼 강량(姜亮)이 최후의 수군 만호로 근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의 둘레는 970척, 높이 12척이었으나 현재는 높이 2m, 길이 100여m의 성곽 기초만 남아있다.
 1871년에 간행된 ‘다경진지(多慶鎭誌)’에는 수군만호 1명을 포함, 장교 19명, 진무(鎭撫) 13명, 도인(道引) 5명 등 총 193명이 배치되었으며, 영산창(榮山倉)에서 출발한 세공선단(稅貢船團)이 나주 역도(歷島)에서 영광 소약도(小若島)까지 가는 호송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해안가에 전선청의 전선 건조 당시 목판과 목책이 남아 있다.
◈금남 최부 묘
 금남(錦南) 최부(崔溥 1454~1504년)는 영남학파의 사종(師宗)인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생이었으며 김굉필, 정여창, 조위, 김일손 등 당대 쟁쟁한 신진사류와 같은 동문이었다.
 그는 1482년(성종 13)에 사미시에 급제하고 이어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 교서관 저작(校書館 著作) 및 박사(博士)를 거쳐 군자감 주부(軍資監主溥)와 홍문관 수찬(弘文館 修撰)을 역임하였으며,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 1506년에 통정대부승정원 도승지(通政大夫 承政院 都承旨)로 추증되었다.
 무안군은 ‘표해록’의 저자 금남 ‘최부의 묘’ 관광자원화를 위해 관련 스토리 발굴 및 개발계획 수립을 위해 지난 9월 용역을 마쳤다.
◈청계면 사마리 '화설당'
 화설당(花雪堂 문화재자료 제271호)은 청계면 사마리에 있으며 1610년경에 화설당 입향조 ‘류자’의 후손인 화설처사花雪處士 류운(柳運.1580~1643)이 건축했다. 당호는 나주 목사 남곽 박동열(1564-1622)이 군사용 대나무를 채취하기 위하여 삼향을 가다가 들러 이름이 없음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1972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방문한 마을이기도 하다.
◈기타 관광문화
 이밖에 몽탄면 이산리 ‘영상간강 느러지’, 일로읍 ‘소댕이 나루터’, 동양 최대의 ‘무안회산백련지(무안군 백련로 333/☎061-285-1323)’, 육해공군 탐방의 몽탄 ‘밀리터리테마파크’, 인간과 자연이 공존공생 하는 ‘무안생태갯벌센터(무안군 해제면 용산길 140/☎061-450-5631)’, 노송가 낙조가 장관인 ‘홀통·톱머리해변’ 등이 있으며, 먹을거리는 게르마늄이 풍부한 ‘갯벌세발낙지’, 무기염류와 비타민이 풍부한 ‘감태’, 황토 고구마, 황토 양파, 볏짚으로 구어 낸 몽탄 ‘짚불구이’ 등이 유명하다.
◈맛집
 낙지 등 농축수산물 맛집으로는 ▲승달가든(061-454-1462) ▲월두횟집(453-1480) ▲동산정(452-9906) ▲내고향뻘낙지(453-3828) ▲보스식당(454-1214) ▲향림횟집(453-2055) ▲숙이네식당(452-9857) ▲싸다횟집(452-2176) ▲굴비랑낙지랑(453-5805) 등이 있으며, 짚불구이는 사창짚불이(453-0760)와 두암식당(452-3775) 등이 유명하다.
/이민행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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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07 [14:38]  최종편집: ⓒ ror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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