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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過猶不及(과유불급)
윤창식 초당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윤창식 교수 기사입력  2011/06/1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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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 한국 사회는 경제 분야에서만 인플레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기실, 말(言)도 인플레를 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말이 많으면 ‘말값’이 떨어지는 법이다. 꼭 해야 할 말은 당연히 해야 되겠으나, 그것도 중언부언하다 보면 말의 효능이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하지 말아야 할 말, 진실하지 못한 말을 아무렇게나 지껄인다면 사회적으로 언어적 공해가 될 뿐만 아니라 남에게 심각한 상처가 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말도 그렇다. 요즈음은 별의 별 사랑이 다 있다. ‘중독된 사랑', ‘지독한 사랑’, ‘사랑 만들기'까지 등장한다. 바야흐로 사랑 홍수 시대다. “사랑이라면, 너무 많다고 나쁠 것이 없다”고 항변할지 몰라도, 그저 별 생각 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남발한다면, 어쩐지 진지하지 못하고 때론 무책임하게 들리기 까지 한다.

  파스칼은 “사랑을 말할 때 사랑을 느낀다."고 했다지만, 사랑은 결코 사변적(思辨的)인 말장난의 대상쯤으로 가벼이 대할 일은 아니다. 노자가 <도덕경> 첫 머리에서 “道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道가 아니다(道可道 非商道)”라고 설파했듯이,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사랑의 순수한 색깔이 퇴색되는지 모른다.

  일부 방송 드라마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같은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라도 대사의 분량이 몇 년 전에 비하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가 다변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어느 정도는 그에 상응한 언어 표현의 증가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언어가 인플레 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는 자신의 진정한 뜻을 남에게 순수하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일부 시트콤이 보여주듯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말의 홍수는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은 전달될지 몰라도 ‘참마음’은 가려져 인간관계의 왜곡 현상을 가져올 위험을 안고 있다.

  너무 많아 값어치가 떨어지기로는 ‘꽃’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세상에 꽃을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은,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장소 불문하고 꽃이 넘쳐난다면, 과연 진정한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장미다발이 연인들에게는 사랑의 징표가 된지 오래 되었지만, 어쩐지 그것도 지나치게 유행에 휩쓸린 감이 없지 않아 본래의 장미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장미를 주고받는다면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이니!) 사랑 또한 너무 가볍거나 버거워 장미라는 꽃의 본질, 나아가서 사랑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은 아닐까. 꽃이 볼썽사납기로는 개업집 앞에 수도 없이 늘어선, 커다란 화한들이 아닐까 한다.

  몰론 지인의 개업을 축하하고 성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아름다운 것이지만, 아무런 개성도 없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잔뜩 꽃 너울을 뒤집어 쓴 채 개업집 앞 도로 전체를 점령한 채 위압적으로 도열해 있는 축화 화환은 별로 정이 가는 모습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꽃이 본래 지니고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보다는 꽃을 권세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학교나 사회단체 혹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벌이는 포상 행위는, 그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것들도 꽤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학입시 전형자료가 되어버린 각종 경시대회가 전국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그에 따라 경시대회 입상을 목표로 한 과외도 성행한다고 하니, 상이 지닌 본래의 순수 기능이 왜곡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몰론 포상은 그 수상자에게는 격려와 영광이 되는 일이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그것도 정도 문제가 아닐까 한다. 전국의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각종 문화행사에도 거품현상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일부는 매우 개성 있고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행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급조되어 문화의 향취는커녕 그저 난잡한 놀이로 전락한 것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OO아가씨 선발 대회’는 전국적으로 그 수효가 너무 많아 단연 세계 으뜸이다. 그것도 으뜸이라고 박수칠 일은 못 된다. 고장의 특산물을 홍보하는 사절단을 선발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선발과정의 불미스러운 잡음과 성(性)상품화 논란까지 일으키는 상당수의 아가씨 선발대회를 매년 치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도 질의 문제이지 양의 문제는 아니며, 이 말 속에는 한 가지 깊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들어 있다. 중국의 한고조(漢高祖) 유방(有邦)과 한신(韓信)이 주연(酒宴) 자리에서 휘하 군졸 거느리기 능력을 논하다가 한신(韓信)이 자신은 군졸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다스릴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다다익선’이라는 ‘말실수’를 하고 만다. 자신이 유방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친 그 말 때문에 한신은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多多益善이라는 한자성어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경구로도 쓰이는 것이다. 그만큼 말이라는 것은 제대로 하기가 어렵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는 도구인 것이다. 침묵도 언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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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6/10 [00:56]  최종편집: ⓒ ror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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